단행본 인물과 사상의 종간 일상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공부는 잘 했지만 학교가 내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당시 나에게 동성애자는 미친놈들이었고, 연방제 통일 같은 건 빨갱이 소리였고, 남녀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능력있는 놈이 결국 출세하는 거라며 세상을 단순하게 봤다. 내가 대통령이라도 되면 못할일이 없을 것 같았다.

강준만은 나의 첫 스승이다. 그에 대한 내 정서적 애착은 지금에 와서 내가 그의 가르침을 얼마나 받아들였는가, 그와 생각하는 입장이 얼마만큼 다른가의 문제를 훌쩍 뛰어 넘는다. 나는 인물과 사상에 실린 강준만의 툴툴 거리는 소리에 낄낄거리면서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군에 가기 전까지의 2년. 이미 10권이 넘게 나와있던 예전 책들을 따라잡고, 강준만이 소개시켜주는 사람들의 책들을 접하는 과정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 지 모른다.

나를 김규항 같은 사람이 본다면 아마 진보적인 책들로 지적, 양심적 만족이나 느끼려 드는 속물적인 대학생으로 규정할 것이다. 그게 맞는 정의이니까. 하지만 내가 강준만에게 배운 것들, 김규항을 포함해서 강준만이 소개시켜 준 사람들에게 배운 것들이 전혀 쓸모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방황중이고, 떻게 하면 자본주의 피라미드에서 한 자리라도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 하며 사는 게 나의 모습이지만, 그래서 그렇게 끝나는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관심을 지속하는 것,
약자를 잡아먹는 사회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갖게 된 것,
더 작게는 빨래를 내가 안 하면 결국 엄마가 피곤한 몸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까지, 그게 보잘 것 없지만 진보라고 생각하며, 난 그것을 배워서 안다고 믿는다.

고작 한 줌의 양심, 자위용 정의감이라고 비난 받는 것에 달리 변명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나름의 믿음을 갖고 최악에서 차악을, 100번 잘못 할 걸 99번 잘못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이런 노력이 사회적 진보에 미약하지만 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강준만은 확실한 우파이고 나는 우파,좌파 같은 이념도 없는 그냥 속물, 묻혀가는 사람이자만
그럼에도 그것이 강준만이 내게 남긴 유산이다.

강준만이 갖고 있던 공정함에 대한 열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받는 데 인색하지 않는 마음가짐, 아무리 막가파 자본주의 사회를 살더라도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인물과 사상과 강준만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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