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빌려드립니다 - 앨리 러셀 혹실드 독서일기

 앨리 러셀 혹실드의 '나를 빌려드립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시장에 아웃소싱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것이 파괴한 가치를 찾아보려는 시도인데, 이게 그렇게 술술 풀릴 문제는 아니고 저자도 무리하게 우기지는 않는다.

 공동체의 호혜로 이루어지던 것들이 시장 거래로 대체되는 모습이 불편한 지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거래가 호혜를 밀어낸 것인지 반대로 호혜가 사라진 곳에 거래라도 있어 그걸 보완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거래가 꼭 나쁜거냐도 애매하지만)

 저자가 드는 예는 이런 것들이다. 예전에는 결혼식을 부부와 가족들이 그들만의 개성을 담아 꾸몄으나 요새는 그 몫을 돈을 주고 산 웨딩플레너가 맡아 '개인적인 추억'까지 가공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인 내 눈에는 그것마저 굉장히 '사적인 노력'으로 보이는 것것이, 우리 한국인은 돈을 들여 '추억'을 가장하지도 않고 그냥 돈만 쓰는 결혼식을 하지 않나 하하. 책 전체에서 다소 쌩뚱맞은 사례인 '대리모' 부분을 제외한다면 다 그런 식이다. 아이의 생일에 직접 파티를 주관할 것인가 파티 플래너를 고용할 것인가는 모두 '좋은 파티의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는 그런 열정? 강박?이 덜하다. 혹은 사회자가 진행하는 한국식 돌잔치를 보라. 극도로 상업적이면서 동시에 그 돈을 들이고도 가족만의 의미는 하나도 없는 이벤트를 그냥 감행한다. 혹실드가 와서 보면 뭐라고 평할까? 회사에서 쓰던 360도 다면평가와 개선 컨설팅을 좋은 아버지 평가에 도입하는 것이 너무 상업적인가? 그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적인 것을 소중히 하는 태도 아닐까?노인돌보미 문제는 어떤가. 책에서 묘사하는 '돈으로 산 감정 돌봄' 같은 것도 감정적인 것을 소중히하다보니 나오는 것이라는 걸 그런 고민조차 거의 없는 사회에 살다 보니 더 잘 보이는 듯하다.

 한국에서 '저런 것까지 아웃소싱하다니'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들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니 제사상 차림, 벌초 같은 유교식 정성 전시거나, '프로포즈' 같은 '감동적이어야만 하는' 이벤트가 떠오른다. 모두 당위가 요구하는 정성이 현대 사회의 평균적인 다수가 성취하는데 매우 어려운 것들이다. 돈을 주고 정성을 사는 게 부당하다면, 정성을 표현하는 방식도 실질적인 방식으로 정리되는 게 괴리를 줄이는 길 아닌가 싶다.

정리는 잘 안되는군;

덧글

  • 싸리 2014/04/13 10:25 #

    결혼, 돌잔치, 기타 많은 우리들의 소비활동의 목적은 중산층으로의 편입...인것 같아요. 실제 편입도 아니고 마치 편입되어 보일 것만 같은 느낌...그 느낌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 같아요. 혹은 중산층처럼 보이기...라고 말해도 되고..개성이나 자아도 그 하위 항목일 뿐...하하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Google Analyctics

<script> (function(i,s,o,g,r,a,m){i['GoogleAnalyticsObject']=r;i[r]=i[r]||function(){ (i[r].q=i[r].q||[]).push(arguments)},i[r].l=1*new Date();a=s.createElement(o), m=s.getElementsByTagName(o)[0];a.async=1;a.src=g;m.parentNode.insertBefore(a,m) })(window,document,'script','//www.google-analytics.com/analytics.js','ga'); ga('create', 'UA-47865871-1', 'egloos.com'); ga('send', 'pageview');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