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미친 듯이 쓰고, 사소한 일로 결투를 벌여 사람을 죽이고, 엉터리 치료를 하고, 살인범보다 고발자를 더 미워하고. 뭐 다 그렇다 치는데 사교계는 정말 신기한 공간이다. 공공연하게 애인을 두고, 경쟁적으로 애인의 잘난 외모와 매너를 자랑하고, 애인의 서포터가 되어주고 그걸 바라며 사교계에 입성하고. 요즘도 사교계라는 단어는 쓰던데, 설마 이런 공간은 아니겠지? 내가 너무 나이브한 건가.
아무튼 소설이 기괴하다는 생각은 읽으면서 떠나지 않았는데, 이게 몰입을 떨어뜨리는 면도 있지만, 시트콤 같은 분위기가 우연에 기댄 급작스런 진행이나 과격한 사건들의 연속이 주는 부담을 상쇄시켜주는 면도 있다. 또 이런 분위기는 고리오 영감이 딸을 위해 아끼던 은식기를 우그러뜨리며 우는 장면 같은 섬뜩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신분제는 매우 노골적이고 가시적인 지위의 구분인데, 신분의 자리를 돈이 꿰차면서 역시 노골적인 과시가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현대의 풍자극보다도 오히려 더 돈의 권능이 구체적이다. 단적으로, 결혼이 언급되는 구절에서도 긴 말 없이 그게 '얼마짜리'인지 밝히더라. 이런 정글의 법칙을 명철한 보세앙 부인이나 왕년의 성공한 사업가 고리오 영감이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들은 오히려 마음을 너무 내주어 몰락한다. 그 게 발자크가 자신만만하게 공언한, '성벽 안팎의 독자들이 눈물 꽤나 흘릴 것'이라던 비극인데, 확실히 과장인데도 설득력이 있다. 보세앙 부인의 비유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처럼 - "우리의 마음은 보물이죠. 그것을 단번에 비워버리면 파산하고 말아요. 또 어떤 사람이 수중에 한푼도 없다는 것이 용서 못 할 일이 듯이 감정을 송두리째 다 내보여준다는 것도 용서 못 할 일이지요." - 발자크는 마음과 돈을 자산 개념으로 엮고 있다. 물론 마음의 적자를 돈으로 만회하려는 시도는 허무한 일이고 긴 여운을 남긴다.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프랑스 사회에 '복종, 투쟁, 저항' 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마지막에 선택하는 길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개인적으로 체제에서 성공하는 쪽이었다. 파리에는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그 후로 7월 혁명, 2월 혁명, 제정과 다시 공화정 그리고 파리 코뮌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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