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중국 - 스콧 로젤, 내털리 헬 독서일기


중국이 교육받은 인적자원 부족으로 중진국 함정에 갇힐 수 있다는 경고.

선진국이 되는 과정은 이렇다.
1) 빈곤국 2)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제조 공장이 되어 수출 중진국 3)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여 선진국

중진국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임금은 오르는데 첨단산업 경쟁력이 없어, 더 저렴한 노동력 국가에 치이게 된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는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교육은 수십년의 투자가 필요한데 반해, 중진국 시절에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없어도 나라가 돌아가므로 미리 준비를 안 하는 수가 많다. 

중진국을 성공적으로 졸업한 한국, 대만, 아일랜드는 중진국 초기부터 고학력 인구가 매우 높았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멕시코 등의 나라는 그렇지 못해서, 성장이 늦어지고 비공식 경제와 범죄가 커지며 고전했다.
중국은 노동 가능 인구의 30%만이 고등학교 졸업. 저자는 50% 이하에서 중진국 함정을 빠져나올 수 없다고 본다.

이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준비하지 못했던 탓으로, 2000년대 들어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이 너무 빨리 성장해서 시간이 부족하다.

여기에 중국의 특수한 문제가 부가적으로 있다.
- 농촌지역 빈혈, 안경 부족, 영아 단계에서 발달교육 부족 등 기본적인 인적 투자가 안되어 있음
- 도농을 법적으로 분리시키는 후커우 제도
- 대규모 여아 낙태로 잉여 남성 인구

중국이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중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큰 악영향이 올 것이다.

The middle-income trap | The Economist

보이후드 (2014) 영화

12년간 배우들이 실제 나이먹어가는 것에 맞춰 영화속의 사건들도 12년을 진행시킨다는 기획이,
재미있는 재치나 배우들의 얼굴이 변하는 볼거리 (이것도 대단한 경험이지만!) 이상의 뭔가를 주는 걸까?

그렇더라.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변할 지 모르고, 지금 맺고 있는 관계가 언제 뚝 떨어질지 모르며, 내가 어떻게 변할 지 모르면서, 막장 드라마 쪽대본을 든 배우처럼 현재에 묶여 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면 어떤 이야기가 남을 수밖에 없다.
모든 순간 순간의 생생함과 대비되는 인생의 알 수 없음이 결합된 채 시간이 흘러 어느덧 평범한 삶의 한 단락이 뒤돌아 보임을 인식하는 과정을, 영화를 통해 진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 사는 게 그렇다.

물론 영화니까 편집을 통해 지난 과거를 한 번에 정리해서 재구성 했겠지.
그러나 재미있게도 우리의 기억 역시 편집자여서, 나의 인생을 빠짐없이 살아온 나 역시 지금의 나의 편집을 피해 '원본'을 감상할 방법은 없다. (기억 자아와 경험 자아!)
지난 삶에서 복선을 부여하고 서사로 엮어가며 의미를 찾기도 하고 또는 그저 감상하면서 애틋해하고 앞으로 살아갈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어찌 되었든 10년 전의 내 생각이 담긴 여기 블로그에 글을 남겨본다.

나를 빌려드립니다 - 앨리 러셀 혹실드 독서일기

 앨리 러셀 혹실드의 '나를 빌려드립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시장에 아웃소싱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것이 파괴한 가치를 찾아보려는 시도인데, 이게 그렇게 술술 풀릴 문제는 아니고 저자도 무리하게 우기지는 않는다.

 공동체의 호혜로 이루어지던 것들이 시장 거래로 대체되는 모습이 불편한 지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거래가 호혜를 밀어낸 것인지 반대로 호혜가 사라진 곳에 거래라도 있어 그걸 보완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거래가 꼭 나쁜거냐도 애매하지만)

 저자가 드는 예는 이런 것들이다. 예전에는 결혼식을 부부와 가족들이 그들만의 개성을 담아 꾸몄으나 요새는 그 몫을 돈을 주고 산 웨딩플레너가 맡아 '개인적인 추억'까지 가공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인 내 눈에는 그것마저 굉장히 '사적인 노력'으로 보이는 것것이, 우리 한국인은 돈을 들여 '추억'을 가장하지도 않고 그냥 돈만 쓰는 결혼식을 하지 않나 하하. 책 전체에서 다소 쌩뚱맞은 사례인 '대리모' 부분을 제외한다면 다 그런 식이다. 아이의 생일에 직접 파티를 주관할 것인가 파티 플래너를 고용할 것인가는 모두 '좋은 파티의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는 그런 열정? 강박?이 덜하다. 혹은 사회자가 진행하는 한국식 돌잔치를 보라. 극도로 상업적이면서 동시에 그 돈을 들이고도 가족만의 의미는 하나도 없는 이벤트를 그냥 감행한다. 혹실드가 와서 보면 뭐라고 평할까? 회사에서 쓰던 360도 다면평가와 개선 컨설팅을 좋은 아버지 평가에 도입하는 것이 너무 상업적인가? 그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적인 것을 소중히 하는 태도 아닐까?노인돌보미 문제는 어떤가. 책에서 묘사하는 '돈으로 산 감정 돌봄' 같은 것도 감정적인 것을 소중히하다보니 나오는 것이라는 걸 그런 고민조차 거의 없는 사회에 살다 보니 더 잘 보이는 듯하다.

 한국에서 '저런 것까지 아웃소싱하다니'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들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니 제사상 차림, 벌초 같은 유교식 정성 전시거나, '프로포즈' 같은 '감동적이어야만 하는' 이벤트가 떠오른다. 모두 당위가 요구하는 정성이 현대 사회의 평균적인 다수가 성취하는데 매우 어려운 것들이다. 돈을 주고 정성을 사는 게 부당하다면, 정성을 표현하는 방식도 실질적인 방식으로 정리되는 게 괴리를 줄이는 길 아닌가 싶다.

정리는 잘 안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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